175cm 이상 머리 조심!
0923

어느 날, 성수동 근처의 좁은 골목길. 양소희가 인스타에서 본 라멘집을 찾아 나선 길이었는데, 고유빈이 마침 근처에서 연습을 마치고 나오는 타이밍이라 합류하게 됐다. 둘은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골목을 누볐다. 5월의 늦은 오후, 아직 해가 남아 있어서 건물 사이로 비스듬한 햇살이 떨어졌다.

문제의 라멘집은 골목 안쪽, 반지하 건물을 개조한 듯한 구조였다. 입구가 유난히 낮았다. 나무로 된 문틀에 노란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그중 하나에 빨간 매직으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 175cm 이상 머리 조심! ⟩

양소희가 먼저 그걸 봤다. 171cm인 그녀는 문틀 높이를 올려다보더니 여유롭게 한 발을 안으로 들였다. 머리 위로 손바닥 하나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며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유빈아, 거기 머리 조심이래.

그런데 고유빈은 그 말을 듣지 못했다. 정확히는 듣긴 들었는데, 양소희가 문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뒤를 돌아보는 모습, 그러니까 한쪽 어깨만 살짝 틀고 고개를 돌린 그 각도가 너무 좋아서 거기에 눈이 팔린 것이었다. 186cm의 장신이 아무런 경계심 없이 성큼 문턱을 넘었다.

쿵.

둔탁한 소리가 좁은 입구에 울려 퍼졌다. 이마 바로 위, 정수리 근처가 나무 문틀에 정통으로 부딪혔다. 고유빈은 한 발짝 뒤로 비틀거리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반묶음으로 올린 남색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이 파고들었다.

What the⋯⋯!

양소희가 화들짝 놀라며 다시 문 쪽으로 돌아왔다. 고유빈은 허리를 숙인 채 이마를 문지르고 있었는데, 통증 때문인지 눈가가 찡그려져 있으면서도 입꼬리는 이상하게 올라가 있었다. 아프면서도 웃기다는 표정이었다.

아 잠깐만. 잠깐⋯⋯ 하하, 아 진짜 아파.

양소희가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치우고 이마를 확인하려 했다. 고유빈은 순순히 손을 내리며 고개를 숙여 줬다. 정수리 앞쪽이 살짝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양소희의 손끝이 부딪힌 자리를 조심스럽게 누르자 고유빈이 아, 하고 작은 신음을 흘렸다. 그러다 그녀의 표정을 보고는 얼른 웃음을 만들었다.

괜찮아 괜찮아. 나 머리 단단한 거 알지? 누나들한테 맞으면서 커서.

양소희가 '내가 머리 조심이라고 말했잖아'라는 눈빛을 보내자, 그는 머쓱하게 뒷목을 긁었다.

아, 그거⋯⋯ 소희가 뒤돌아보는데 거기만 봤어. 글씨 같은 거 눈에 안 들어오더라고.

그 대답에 그녀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고, 고유빈은 그 웃음소리를 듣더니 아까의 통증쯤은 이미 잊어버린 얼굴로 헤실헤실 따라 웃었다. 이번에는 문틀을 손으로 짚고 고개를 확실히 숙여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면서도 양소희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여기 주인분 진짜 웃기다. 포스트잇으로 해 놓으면 누가 봐⋯⋯ 아, 소희는 봤구나. 나만 못 본 거네.

매장 안에 앉자마자 고유빈은 메뉴판을 펼치다가 말고 문득 이마를 가리키며 양소희를 올려다봤다.

소희야, 여기 호 불어 줘. 아프거든.

장난기 가득한 눈이었다. 171cm는 통과하고 186cm는 당하는 문턱의 차별적 높이에 대한 불만 따위는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그저 이 상황을 핑계로 하나라도 더 부탁하고 싶은 얼굴이었다.

'him'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멋진 남자가 되기 위한 고유빈의 공부 일기!  (0) 2026.08.26
ⓒ yunico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