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성수동 근처의 좁은 골목길. 양소희가 인스타에서 본 라멘집을 찾아 나선 길이었는데, 고유빈이 마침 근처에서 연습을 마치고 나오는 타이밍이라 합류하게 됐다. 둘은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골목을 누볐다. 5월의 늦은 오후, 아직 해가 남아 있어서 건물 사이로 비스듬한 햇살이 떨어졌다.문제의 라멘집은 골목 안쪽, 반지하 건물을 개조한 듯한 구조였다. 입구가 유난히 낮았다. 나무로 된 문틀에 노란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그중 하나에 빨간 매직으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175cm 이상 머리 조심! ⟩양소희가 먼저 그걸 봤다. 171cm인 그녀는 문틀 높이를 올려다보더니 여유롭게 한 발을 안으로 들였다. 머리 위로 손바닥 하나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며 입꼬리를 슬쩍 올렸..
그렇게 마시면 내일 속 아파.밀려온 물컵을 내려다보던 고유빈은 잠깐 멍하니 있다가, 그 컵을 순순히 집어 들었다. 반쯤 마시고 내려놓는데 잔 바닥이 테이블에 닿는 소리가 아까보다 훨씬 조심스러웠다. 위스키로 데워진 목구멍에 찬물이 지나가자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이 가슴 안에서 뒤섞이는 이상한 감각이 들었다. 고유빈은 손등으로 입술을 문지르며 눈꼬리를 접었다. 걱정을 받는다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인 줄 몰랐다.걱정해 주는 거지, 지금? 나 그거 되게 좋아하는데.셔츠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리며 고유빈은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얇은 팔목에 걸린 시계가 캔들 불빛에 노랗게 번졌다. 바 안쪽 스피커에서 흐르던 재즈가 어느새 조금 더 느린 곡으로 넘어가 있었고, 옆 테이블 손님들은 계산을 하고 나가는 중이었..
소희야아. 전화 받아줘서 고마워. 아까 헤어지고 바로 연락하고 싶어서 유준이랑 밥 먹는 동안 폰만 만지작거렸어. 재현이가 보면 '폰 좀 내려놔' 했을 텐데.근데 소희 목소리 지금 되게 좋다. 좀 잠긴 것 같기도 하고. 원래 밤에 이런 목소리야?왜, 이 목소리가 더 취향이야? 그럼 낮에도 내줄 수 있어, 유빈아.소희 지금 나 놀리는 거지?좋아. 되게 좋아, 이 목소리. 근데 낮에도 내준다고 하면 나 아마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은데. 소희 목소리만 생각하느라.방금 내 이름 부르는 거.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어. 그거 자주 해주면 안 돼? '유빈아' 이거.아.뭐 어렵다고. 좋아. 대신, 유빈이도 소희야~ 하고 자주 불러줘야 해.소희야아.소희야. 양소희. 소희. 세 번 불렀으니까 세 번 다 대답해줘...
- 5/16 MON오늘부터 나 고유빈, 사자성어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다. 멋있으니까!😎 어제 소희랑 통화하는데 내가 좀⋯⋯ 바보 같았다. 아니 바보 맞지만! 그래도 좀 더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밴드 멤버들이랑 있을때 재현이가 어려운말 쓰면 그냥 what's that? 하고 넘겼는데, 소희 앞에서는 그러면 안될 것 같아. 누나들도 맨날 나보고 책 좀 읽으라고 했는데 이제야 그말이 뭔지 알겠다. 첫번째 사자성어는⋯⋯ 이거다. 금상첨화 (錦上添花). 비단 위에 꽃을 더한다는 뜻이라는데, 좋은 것에 좋은 것이 더해지는 거라고 한다. 어제 소희 목소리로 노래 듣고, 내일 또 만나기로 한 게 딱 이거 아닌가? 최고의 하루에 최고의 약속이 더해졌으니까. perfect! 근데 이거 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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